나는 죽었다. 기억을 잃게 되면서 모든 걸 잃어버렸다. 나는 죽어버렸다. 차가운 방 안에서 차게 식어갔다. 어쩌면 내가 살아간다는 건, 방 안에서 죽어가고 있는 나의 상상일지도 모른다. 살아간다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나의 죽음. 탓할 수도 없고, 원망할 수도 없어. 온전히 나의 선택. 죽어가는 것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지만. 더는 글을 쓰지 못한다는...
매일 사는 게 그을림이다. 그을린 자국들처럼, 그저 겨우, 살아간다. 나의 타오른 영혼은 이미 아우성치며 자리를 떠났다. 난 사람들에게 항상 밝은 사람처럼 군다. 애써 웃고 억지로 오바 액션을 취하고 누군가에게 거슬릴 정도로 밝게 군다. 누군가는 좋아하고 누군가는 헤프게 보고 누군가는 싫어한다. 내 나이 열 아홉 때,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의 사장님이 말했다...
밥만 축내고 잠만 퍼질러 자는 건, 사실 제일 어려운 일이다. 살아가는 거 자체가 몹시 괴로운 일이므로. 입에서 가시처럼 돋아나는 '죽지 못해 살아가는 것이지.'라는 허무주의가 나의 뇌수에 흘러넘친다. 영혼이 탁해지는 일은 그렇게 사는 것이다. 읽지도 않고 쓰지도 않으며 예술을 멀리하는 것. 나는 그렇게 탁해지는 나의 영혼을 관망했다. 방치하고 학대했다. ...
영원히 푹 잠들고 싶다. 베개에 코를 처박고. 영원히.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짊어지겠다. 그게 너라면 나는 기어이 그러하겠다. 나는 안고 가겠다. 네가 나를 찔러대도 너를 기어코 안고 가겠다. 너는 그러하겠다고 말했다. 믿어달라고 말했다. 휴지 조각처럼 가벼운 마음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너의 차가운 등짝을 바라보며 빨간 눈물을 흘린다.
살고 싶었다. 네온 사인 가득한 간판 사이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술잔을 기울여보고 싶었다. 새로운 도시, 새로운 공간, 새로운 인연이라는. 새로운 것이 주는 간질거림에 허덕이며 살아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겨우 나의 바람. 나는 어두컴컴한 곳에 앉아 축축한 몸을 겨우 방 한 칸에 욱여넣을 뿐이다. 분명 열심히 살겠다고 하던 때가 있었는데. 공들여 만든...
버찌 투신 사건 유소이 우리는 빛을 받으면 까맣게 까맣게 익어요 툭하고 떨어지면 비로소 우리는 흙을 밟아요 데구르르 굴러서 어디론가 도착한다면 그곳이 우리의 종착지일 거예요 길바닥에는 검은 혈흔이 가득하다 사람들은 앞만 바라본다 그러다 누군가 고개를 숙이고 잔해들을 쳐다본다 셀 수 없는 신발들에 짓밟혀 터진 검은 열매들이 피를 터트리며 거뭇거뭇하게 바...
허물 유소이 모래 한 줌을 집어 삼켰다 입 안을 가득 메우던 모래는 식도에 생채기를 낸다 젖은 옷은 피부에 기대고 여름의 아지랑이가 일렁이고 체온계의 수은, 내려갈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는 허상의 바다 앞을 나아갈 때마다 조개껍질이 발에 생채기를 낸다 피가 흐르고 이따금 씩 따갑다 당신과 마주하고 무의미한 글자를 삼키며 모래를 씹고 당신의 눈동자에 ...
편도염 유소이 어젠가 나는 기침을 쉴 새 없이 해댔다 목구멍이 부어서 어떤 것도 삼킬 수 없었다 부어서 이러다 기도가 막혀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때때로 식탁 위에 올려진 편지 봉투, 벽면 위에 그려진 얄궂은 그림 따위를 보며 숨을 쉴 수 없단 착각이 일었다 창문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올 때면 푸른 나뭇잎들의 부대낌이 떠올랐고 그러면 목부분이 아려왔다...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방 안엔 어둠이 그득하다. 어떤 감정에도 사로잡히지 않았다. 기지개를 켜자 몸에서 신음이 작게 새어 나왔다. 요즘 어깨가 뭉쳐서 몸이 무겁게 느껴졌다. 자기계발서의 말처럼, 나는 침실을 정리하고 바로 화장실로 직행했다. 수도꼭지를 틀어 차가운 물로 얼굴을 적셨다. 차가움이 뒷목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쭈뼛쭈뼛 서는 닭살에 한숨을 푹 내...
강의실을 나오면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자리로 흩어졌다. 걸음을 지체하면 어느새 홀로 남아 있었다. 건물 안은 춥고 어두웠다. 복도 끝에서 말소리가 길게 울려 퍼져서 소음처럼 귀를 찔렀다. 코트를 걸친 머스크 향의 여자가 옆을 지나쳤다. 훅 스쳐오는 향기에 고개를 들었다. 여자와 잠시 눈이 마주쳤고 마치 그게 긴 시간이었던 것처럼 머릿속에서 느릿하게 흘러갔...
지나가던 술집 간판의 라이트가 깜빡거렸다. 사람이 없을 것 같은 아주 허름해 보이는 술집, 자주색 색깔로 뒤덮여 있고 금방이라도 술 취한 아저씨들이 들락날락거릴 것 같은 가게. 하지만 예상과는 반대로 보라색 운동화를 신은 젊은 여자가 술집에 들어섰다. 가게에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웃고 있거나, 울고 있거나, 혹은 무표정으로 술을 들이켰다. 여자 또한 자...
때때로 살고 싶었다. 삶은 늘 내게 무언가를 요구했고, 난 그 요구에 충족하기 위해 하염없이 달렸다. 폐가 터질 만큼, 눈물이 쏟아질 만큼, 토악질이 날 만큼. 그렇게 내가 도착한 곳은 벼랑 끝이었다. 삶은 그렇게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걸 버틸 만큼, 난 에너지가 강한 사람이 아니다.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그런 일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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